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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칼럼-[야! 한국 사회] 불온한 상상/ 김성경
번호
9
작성일
2017-03-01
첨부

등록 :2017-03-01 17:46 /한겨레/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 인권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 침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니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자니 북한 인민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이 눈에 밟힌다. 북한과의 대화를 우선시하면 ‘종북’으로 매도되고,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수호를 강조하면 북한과는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잠자코 입을 닫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보 진영의 학자와 정치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멈칫거리던 사이에 북한 체제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인권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한다. ‘보편적’ 가치이기에 대의명분도 있는데다, 국제사회 또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왔기에 효과 또한 높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최근 유엔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김정남 VX 암살’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김정은을 제소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한국 정부는 과연 ‘살아 있는 권력’인 김정은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처벌’하는 것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학자인 마흐무드 맘다니는 탈식민주의의 맥락에서 국제사회의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각 지역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보편성’이라는 규범으로 작동되는 국제 형사사법제도가 과연 모든 지역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해결책인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남수단의 사례를 들어 국제사회가 평화와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파견한 ‘평화’ 유지군이 결국 심각한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처벌의 대상을 ‘개인’으로 한정짓는 국제형사사법제도는 인종, 민족, 종교 등의 문제와 결합되어 끔찍한 학살과 내전의 배경이 된 정치적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북한 인권 문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굳건히 버티고 있는 김정은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기 위해서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군사적 개입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한반도의 ‘평화’는커녕 상상할 수 없는 혼란과 폭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을 쉽게 법정에 내줄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지속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강대국 중심의 이해관계와 이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에서 김정은의 처벌만으로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지도 의문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지금까지 ‘인권’의 명분으로 자행된 강대국의 침략과 전쟁이 유독 한반도만을 예외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곳곳에 파견된 ‘평화’의 옷을 입은 ‘군대’가 만들어낸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분열과 비참한 폭력이었다. 인권을 보편적 가치로 지향하는 것과는 별개로 복잡한 현실을 감안한 유연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전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강대국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쉽다. 또한 북한 인권이 국제사회의 ‘일방적’ 해결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이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국제사회에 포위당한 북한 체제에 숨구멍을 열어주어, 북한 인민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모색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남한이 고립된 북한의 숨구멍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시금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면. 그 불온한 상상을 이제 감히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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