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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칼럼-[야!한국사회]배고픔의 기억과 치유
번호
47
작성일
2017-05-24
첨부

등록 :2017-05-24 18:38 한겨레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함께 사는 고양이 세 마리 중 막내는 ‘거리’ 출신이다. 시장 골목에 숨어 있던 녀석을 단골 채소가게 사장님이 발견했고, 때마침 토마토를 사러 들렀다가 고양이를 대신 들고 가게를 나선 게 벌써 5년 전이다.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기껏해야 3개월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 짧은 생활이 힘겨웠던 모양인지 녀석은 수년 동안 엄청난 식탐을 뽐내며 배가 불룩해지도록 계속 먹어대기만 했다. 배고팠던 기억, 생명의 위협을 견뎌낸 몸의 습성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리라. 한편 새로운 식구를 맞이한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밥까지 다 먹어치우는 막내가 안쓰러운 모양인지 화 한번 내지 않았다. 상당 시간이 흘러 거리의 습성이 조금씩 옅어진 막내는 이제 자신을 배려했던 늙고 병든 고양이들을 돌본다.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

 

나는 ‘이기적인’ 막내를 보면서 종종 북한을 떠올렸다. 배고팠던 기억, 생존의 위협, 그리고 적대의 경험을 견뎌내고 있는 그들의 습성을 짐작해보는 것이다. 특히 최악의 식량난이라고 알려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대다수의 북한 주민은 철저한 생존주의를 학습했을 확률이 높다. 기본적인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그들은 사회주의 공동체와 같은 이상향이나 배려와 같은 도덕적 가치를 모두 폐기하였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당장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 중요했을 테니 말이다.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지 않은 북한 주민에게도 기근의 기억과 경험은 전수되며, 이는 북한 주민만의 ‘냉혹한’ 생존주의적 습성을 구성하게 한다. 게다가 지난 수년간 남북관계의 악화와 국제사회의 제재 등을 거치면서 북한 주민은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를 가다듬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움은커녕 정치적 문제를 앞세운 적대적 시선을 오롯이 경험한 그들이 다시금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여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문제는 고통의 기억을 체화한 이들과 공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민족이나 통일 같은 거창한 명제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당장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북한과 ‘함께’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가 남북 간의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고무적이다. 민간교류는 분단된 남북의 문화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고, 인도적 지원은 영양부족과 병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제재’를 운운하며 그 어떤 교류와 지원도 막아섰던 지난 정부는 주민의 생활이나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치적 ‘해석’으로 왜곡했다. ‘종북’이라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지식인은 숨죽였으며, 공무원은 무기력했고, 언론은 비겁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내팽개쳐진 북한 주민의 삶은 파괴되었고, 그들의 습성은 가난과 고통으로 더욱 비틀어져 버렸다.

 

북한과 어떻게든 ‘함께’해야 하는 한국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교류와 지원에 힘써야 한다. 지금껏 정치적 손익계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방치해온 한국 사회는 그 책임에서 아주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북한 주민의 고통의 경험과 기억을 치유하려는 노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몸에 새겨진 배고픔의 흔적을 치료하고, 생존에 매몰되어 버린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배고픈 기억에 이기적이기만 했던 막내 고양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시간과 인내심, 그리고 사랑과 배려였다. 하물며 동물도 하는 일을 우리가 하지 못할까. 우리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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