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남북의 창
입력 2017.04.22 (08:09)
<앵커 멘트>
최근 떠들썩했던 김일성 생일 관련 행사들, 특히 열병식과 려명거리 준공식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입니다.
9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김여정은 김정은과 고위 간부들 주변을 자유롭게 오가며 배후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는데요.
이 때문에 서열 2위가 아니냐, 결혼은 했느냐 하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김여정의 그동안 활동을 정리해보고 북한 권력 구도에서 과연 어느 정도 위상인지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2011년 12월, 김정일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이 평양 금수산궁전 앞에 들어섰다.
<녹취>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동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엄숙히 정렬하였습니다.”
후계자였던 김정은이 당시 북한 핵심 실세 7인과 함께 운구차를 호위했고, 단상 한 가운데 올라 육해공군을 사열했다.
이 때, 김정은과 간부들 옆으로 앳된 얼굴의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궁전 안에서도 내내 김정은의 곁을 지키며 온갖 추측을 낳았던 이 여성.
바로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김정일의 딸, 여정이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에 잠긴 초췌한 모습의 막내딸.
그것이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된 김여정의 모습이다.
그리고 6년 후 김일성 105회 생일 열병식에 등장한 여정의 모습은 그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다.
김정은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공식석상 전면에 나선 김여정.
북한 내에서 그녀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해 온 것일까.
김여정이 두 번째로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2년 7월, 평양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장에서다.
김정은과 아내 리설주의 뒤로 화단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 박수를 치고 환하게 웃는 등, 그녀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큰 화제를 낳았다.
철없는 여동생의 행동이란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런 모습에서 김여정이 가진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인터뷰> 김일국(前 北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그런 모습은 전체적인 행사를 주관을 하는 사람이라는 거를 알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실질적인 실무를 보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상태를 보고 지시할 것은 지시를 하고 그만큼 자기의 위치를 찾아 뛰어다닌다는 거죠. 여동생이니까. 그리고 실질적으로 권력의 자리에 있고. 그리고 그만큼 퍼스트패밀리니까.”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3월) :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인 김경옥 동지, 황병서 동지, 김여정 동지가 동행했습니다.”
1년 8개월 후, 김여정은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투표에 동행하며 ‘노동당 책임일꾼’으로 불려진다.
책임 일꾼은 당의 핵심 직책을 맡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호칭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수첩과 펜을 들고 메모하는 모습이 포착돼 공식적으로 핵심 직책에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11월) :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들인 김여정 동지, 김의순 동지가 동행했습니다.”
몇 달 후 북한은 김여정의 직책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다시 한 번 공식 호명한다.
후계자 시절 김정일이 스물여덟에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고모 김경희가 서른살에 국제부 부부장을 맡은 것에 비하면 김여정은 그보다 더 이른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이후 김여정은 다양한 분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한다.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을 비롯해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등의 준공식과 군부대 시찰까지 김정은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대관식이었던 지난해 5월 제7차 당대회.
김정은의 곁에서 꽃다발을 받아들며 밀착 수행을 한 김여정은 마침내 당 중앙위원회 위원 자리까지 오른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5월) : “당 중앙위원회 위원 김여정...”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북한의 장관급으로 보시면 될 것 같고요.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아주 중요한 부서이기 때문에 이 부서 부부장들 정도가 이제 위원으로 같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김여정에 대한 관심은 그녀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으로도 이어졌다.
반지를 낀 모습에선 결혼설이 제기됐고, 임신과 출산설로도 이어졌다.
몇 해 전엔 영국 BBC가 김여정을 아시아의 화제인물로 선정할 만큼 대내외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런 김여정의 행보는 김정일 시대 오랜 세월 북한의 권력 실세로 꼽혔던 김경희와 매우 유사하다.
김정일의 유일한 동복 남매인 김경희.
김경희 역시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목된 즈음부터 당의 주요 직책을 맡기 시작했고,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엔 김정일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사실상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까지 맡았다.
북한은 김경희와 김여정이 함께 말을 타는 모습을 공개하며 둘의 돈독한 관계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북한의 김정일과 김경희 그 오누이가 거의 이제 전설적인 그런 존재로 북한 주민들에게 인식이 돼 있거든요. 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시 환생했다는 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지금 그렇게 플레이하고 있고요.”
그러나 두 여성 권력자에게선 뚜렷한 차이점도 보인다.
우선 김경희는 김정일의 수행자보다 김일성의 딸 역할에 더 충실했다는 점이다.
또 이른 결혼 이후 남편 장성택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실질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여정은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짧은 후계 수업 후 권력을 이어받은 오빠 김정은의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거란 분석이다.
<인터뷰> 김일국(前 北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어찌보면 자기 한 가정을 지키는 문제지 김경희에게는... 뭔가 자기 오빠를 지키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상황이 좀 틀리죠. 지금의 김정은은 김여정에게 아버지죠. 김정은은 만약 신상에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아프다거나 병환에 눕는다거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대단히 곤란해지죠.”
두 여성의 활약 분야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김경희는 노동당 경공업 부장으로 소비재와 관련된 경제분야를 관할했지만, 김여정은 북한 최고권력자의 우상화를 담당하고 있는 선전선동부 소속인 만큼 활동 범위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자본주의는 물질적 동기 요인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극하는데 사회주의는 윤리적 동기나 이런 것들 중시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을 움직이게끔 사회적 동력을 마련하는 핵심 부서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고요. 사실은 이 분야라는 것은 국가 전체의 그 정책 서열상으로도 굉장히 핵심부서 중의 핵심이라고 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선전선동부를 맡았던 김정일 역시 이 시기에 유일지배체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했다.
김일성 우상화를 본격화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김여정 역시 김정일의 이러한 행보를 답습할 것이란 분석이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당의 선전선동 업무를 한다는 것은 북한 전체의 권력 구조에서 서열과 상관없이 탑클래스라고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인물, 핵심적인 인물이 했던 것이고, 따라서 김정일이 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고 사실은 이제 김여정한테 맡겼다는 거 자체도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신뢰성 있는 사람들한테 맡겼다고 볼 수가 있겠고... 김여정이 맡았다는 것은 뭐 단순히 동생 때문만은 아니라 이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능력도 평가를 받고 인정받았다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실제 2013년 정전협정 6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정은이 외신 기자들을 향해 걸어 나오거나 기자들에 둘러싸인 모습 등은 모두 김여정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친근한 지도자 모습을 부각시키는 전략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데, 김여정 역시 주민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여유롭게 웃는 표정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근무 당시 그녀를 직접 만나봤다는 탈북민은 김여정이 실제로도 꽤 소탈했다고 전한다.
<인터뷰> 김일국(前 北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여정은 처음에 봤을 때 동네 누나 같은 느낌, 말도 참 착하게 했고 아랫사람들에게도 인사를 먼저 건넸고 이랬습니까,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면서 첫 이미지가 좋았어요. 독재국가의 권력이라는 건 모든 것이 죽이고 살리는 일이잖아요. 그리 볼 때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미국 정부는 김여정을 인권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지난해 7월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김 씨 일가를 인권 유린의 책임자로 지목한 것이다.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와 엄격한 검열을 선전선동부가 담당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번 제재는 실질적인 효력을 떠나 심리적 압박감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영향을 줄 겁니다. 일단 해외여행 자유롭지가 않겠죠. 뭐 중국 같은 데는 이제 뭐 여행 가능할 수 있다 러시아 정도도 이제 갈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국제적으로 인권유린 범죄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아마 대외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국제적으로 유엔 특히 많이 북한 인권을 부각시키면 좀 이미지 차, 이미지 측면에서 많은 제약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지난 13일,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열린 려명거리 준공식.
김정은의 등장만큼이나 주목 받은 것이 바로 김여정의 등장이었다.
9개월 만에 나타난 여정은 행사 전반을 관여하고 있었고 김정은을 밀착 보필했다.
열병식 행사에서 역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최룡해와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은 그녀가 매우 큰 실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 김일국(前 北노동당 39호실 근무/2015년 탈북) : “김여정은 여성이기에 앞서 김정일의 딸이고 그 어떤 당 중앙 간부이기에 앞서 북한 최고 권력 가문의 제 2인자이고. 김여정을 굳이 나이가 많니 적니, 여자이니 남자이니를 따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거죠. 아마 김여정이 말하자면 제1인자가 보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항상 관찰하는 그런 역할을 수행을 할 거고 그리고 북한의 모든 실무를 집행하는 집행자가 될 겁니다. 진정한 실세죠. 진정한 실세고 진정한 2인자죠. 앞으로도 같을 겁니다.”
김여정의 위상은 집권 6년차를 맞은 김정은의 권력을 따라 높아져 있는 것이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선전하는 북한 정권과 김정은의 이미지가 허상에 가까운 만큼 진정한 권위를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